그게 참 이상합니다. 분명 아닌 것을 아는데, 이거 한 병만 먹으면 기운이 솟는 것 같습니다. 어릴적 알바를 할때도, 일을 하면서도, 거래처에 들를때도, 고생한다며 하나씩 건내주었던 국민음료 박카스. 그 탄생비화도 신기한데요. 박카스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원래 알약이었어
61년 박카스의 탄생과 성장엔 사건사고들이 있는데요. 당초 박카스는 정제, 즉 알약 형태로 출시됐었습니다. 간에 좋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종합강간영양제(綜合强肝營養劑)’라는 설명을 붙인 뒤 제품 이름 찾기에 고민을 하게 돼죠. 고심하던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은 독일 유학 시절 함부르크 시청 지하 홀에서 본 바쿠스(술과 추수의 신의 로마식 명칭, 그리스 신화에선 디오니소스) 신상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주당들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는 바쿠스를 브랜드로 택했습니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회식 문화의 끝판왕인 우리나라에 딱 어울릴만한 것이었죠.
박카스의 마케팅
박카는 술로 상하기 쉬운 간장을 보호한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마케팅했습니다. 음주 전후에 박카스를 먹으면 간의 손상을 예방한다는 것과 함께 대대적인 샘플링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박카스 알약의 한 달 매출이 100정 포장단위로 1만개까지 늘어나면서 동아제약은대박을 기대했죠. 하지만 이듬해 봄, 따뜻한 날씨와 함께 난관이 찾아왔습니다. 박카스 알약을 코팅한 당의가 녹아내린 것인데요. 항의와 대량 반품사태가 이어지자, 연구소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개선했습니다. 하지만 녹아내리는 약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관계자들이 애를 태웠죠.
역시 될놈될인가요? 위기 속에서 묘수가 나왔습니다. 동아제약은 고민 끝에 분위기 쇄신을 위해 박카스를 20cc 앰플 제로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사제와 유사한 앰플에 ‘박카스 내복액’이라고 붙여 62년 8월에 재발매됐죠. 마실때 청량감이 좋았던 덕에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이번엔 파손이 잘 되는 앰플 용기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운반할 때 잘 깨지고, 소비자가 손을 다치는 등의 안전사고도 잦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1년 뒤인 63년 8월 현재와 같은 드링크 타입의 박카스가 탄생했습니다.. 지방간을 억제하는 이노시톨과 비타민 B6를 첨가한 뒤 타우린을 보강한 우리가 지금 마시는 박카스로요. 부활한 박카스를 기존의 박카스와 구분하기 위해 ‘박카스D(드링크)’로 명명했습니다.
한병 값이 짜장면 한 그릇 값
출시 당시 박카스 한 병 가격은 40원, 짜장면 한 그릇 가격과 맞먹었습니다. 당시 물가와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음료였는데요. 이 약점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극복했습니다. ‘젊음과 활력을!’이라는 슬로건도 붙였고요. 한국 전쟁 후 건강 상태가 최악이던 국민에게 ‘간을 건강하게 해주는 건강 지킴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인기 코미디언 김희갑이 등장한 증언식 광고, 여성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배우 남미리가 등장한 광고 등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인기 외화 프로그램이었던 ‘전투(Combat)’ 방송 앞뒤로 한 독점 광고를 집행하면서 이름을 알렸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64년엔 월평균 판매량 35만병을 기록했고, 이듬해엔 56만병으로 늘었습니다. 중간 도매상을 없애고, 약국에 직접 갖다 주는 소매 직거래를 하면서 공격적으로 유통망을 확보했습니다. 67년 박카스 판매가 4700만병을 찍으면서 동아제약이 제약업계 정상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죠. 박카스는 동아제약이 2012년까지 46년간 제약회사 매출 1위를 지키게 한 일등공신이자 지금도 대표 제품입니다.
63년부터 지난해까지 팔린 박카스는 총 219억병, 약 5조원어치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팔린 병의 길이(박카스 한 병 길이 12cm)를 더하면 지구(지구 둘레 약 4만km)를 약 60바퀴 돌고도 남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실감이 안나네요. 2015년에는 단일 제약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국내 매출이 2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올해는 약 3000억원을 찍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네요.
보통 사람으로 시대상을 담는 캠페인
성공의 신화 뒤엔 실패란 녀석이 따라붙기 마련이죠. 76년 정부는 오남용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자양강장 드링크류의 일반 대중 광고를 금지했습니다. 광고가 중단되니 성장은 곧 둔화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91년 박카스F(포르테)로 이름을 바꾼 뒤 맛이 변하면서 소비자 반응이 시큰둥했던 시절도 있었죠. 이후 3년은 ‘박카스 암흑기’라고 해도 좋겠네요. 경쟁업체의 피로회복제가 대거 출현했고, 광고가 가능했던 식품 드링크가 나와 시장 잠식도 본격화했으니까요.
박카스는 93년 다시 한번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자양강장 드링크류의 광고 해금이 찾아온 것이죠. 기존 광고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휴머니티 광고를 전개했습니다. 묵묵히 음지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을 담은 ‘새 한국인’ 시리즈인데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는 카피로, 휴먼 스토리를 펼쳤죠. 저도 광고를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카스F의 매출액이 94년 1000억원을 찍을 정도로 성공적이었습니다. 97년까지 ‘버스종점편’, ‘환경미화원편’, ‘노사화합편’ 등 총 13편의 ‘새 한국인’ 시리즈가 연달아 나왔는데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97년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주력 박카스 소비층이던 30~50대 남성의 구매력이 떨어지자 동아제약은 젊은 소비자 잡기에 나섭니다. ‘지킬 것은 지킨다’라는 유명 카피가 이때 나왔는데요. 동아제약 관계자는 “당시 외환위기 등으로 침체해 있던 사회 분위기를 젊은이들이 먼저 나서 활력을 불어넣어 보자는 공익적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자 했다”며 “단순한 상품 광고가 아닌, 시대를 반영하는 메시지로 젊은 층까지 타깃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